극한직업
2019년 한국영화
감독 : 이병헌
출연 : 류승룡, 이하늬, 진선규, 이동휘
공명, 신하균, 김의성, 신신애
김지영, 오정세, 송영규, 장진희
양현민, 허준석
2018년에 기대이하로 부진했던 한국 영화는 일단 2019년 1월 출발이 무척 좋습니다. '말모이' '내 안의 그놈' 에 이어서 '극한직업'이 대박조짐입니다. 1월 1일 개봉된 문을 여는 영화 '언니'가 망하는 불길한 스타트였지만 잠시의 우려였을 뿐 12월 개봉된 마지막 기대작 '마약왕' 과 'PMC: 더 벙커'의 부진을 깨끗이 만회하고 있습니다.
'극한직업'은 '군함도'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신과 함께' 그런 부류의 영화들 이후에는 정말 오랜만에 '점유율 싹쓸이'로 출발한 작품입니다. 1,000만에 육박한 '보헤미안 랩소디'나 500만을 돌파하며 유종의 미를 거둔 '아쿠아맨'도 출발은 상당히 평범했습니다. 그에 비해서 '극한직업'의 개봉 첫날 점유율은 무려 73.2%, 첫날 관객은 36만명이 넘었습니다. 직전 1위를 달리던 '말모이'와의 격차는 무려 7배가 넘었습니다. 즉 '극한직업' 이하의 2위 부터는 뭐 차이를 논하는 의미가 없어진 것이지요.
이번 '극한직업'의 개봉을 앞두고 아마 가장 조마조마 하다가 한숨 돌린 인물은 바로 류승룡 일 것입니다. 류승룡은 비중있는 조연이나 메인 주연을 번갈아 하면서 대박흥행작을 계속 만들었던 배우입니다. '최종병기 활'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 그리고 '명량' 까지 계속 승승장구를 했지요. 그런 덕분에 그는 흥행배우로 분류되었고, 원톱주연이나 메인 주연급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이후가 문제였지요. '손님' '도리화가' 가 내리 흥행에 참패하고, 송강호과 출연하기로 한 '제 5열'은 사정으로 제작중단이 되었습니다. 원톱 주연작으로 1,000만관객도 동원했고, 대종상 주연상도 탄 배우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절치부심 등장한 영화가 바로 '염력' 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염력' 마저 100만 관객에도 미달하는 참패를 기록했고, 더구나 영화까지 혹평을 받았습니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기대감은 거품처럼 붕괴되었지요.
이런 위기감속에서 '극한직업'은 류승룡이 배수진을 친 작품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이 영화의 장르는 바로 '폭력 조폭 경찰 코미디'입니다. 이 장르는 사실 기본 재미와 기본 관객은 마케팅이나 상영관 확보로 어느 정도 보장이 되긴 하지만 요즘은 좀 뜸한 장르이긴 합니다. 한국 영화가 부활한 '쉬리' 이후 폭력 액션물의 빈도가 많아지면서 조폭 코믹 액션, 경찰 코믹 액션물의 비중도 한 때 높았습니다. '공공의 적'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가문의 영광' '두사부일체' '박수건달' 같은 작품들이 폭력과 웃음을 가미한 조폭 또는 경찰이 등장하는 영화들이었습니다.
이런 장르는 쉽게 식상해지는 경향이 있고, 작품의 질 보다는 오락성이나 유치함 때문에 흥행은 성공해도 혹평을 받는 경우가 많고 폭력성도 문제가 되고, 그러다 보니 점차 시들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조폭소재에 대한 비판도 많았고. 그리고 관객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생각없이 웃고 즐기는 영화보다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작품을 추구하는 경향도 늘어났습니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소재에서 웃음코드가 사라지고 진지해지는 영화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추격자'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신세계' 등이 성공을 하면서 진지한 폭력물이나 스릴러 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황해' '내부자들' 같이 극호평을 받는 작품들도 등장했고.
이런 상황에서 '극한직업'은 요즘은 흔히 보기 어려운 웃음 코드를 남발하는 폭력 코미디 입니다. 영화의 목적이나 기획은 어느 정도 뻔했습니다. 명화나 진지한 영화를 만드는게 아니라 철저히 웃고 즐기는 오락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어려운 영화가 아니라 단순한 영화, 심각한 영화가 아니라 재미난 영화, 무겁지 않고 가벼운 웃음과 오락을 주는 영화....생각외로 요즘 이런 장르가 잘 안나옵니다. 무거운 스릴러는 많았어도. 작년에 망했든 흥했든 나온 영화들을 보면 '독전' '마녀' '목격자' '상류사회' '물괴' '협상' '명당' '안시성' '암수살인' '창궐' '동네 사람들' '성난 황소' 등 대부분 진지하고 무거운 영화들입니다. 경찰 폭력물로 크게 히트한 비교적 최근 영화인 '범죄도시'만 해도 코믹스런 부분이 없는 매우 진지했고 살벌했지요. 작년에 히트한 코믹장르 '완벽한 타인' 은 폭력액션이 아닌 드라마였고, '탐정 리턴즈' 정도가 그나마 코믹 범죄물 정도였죠.
즉 '극한직업'은 21세기 초에 한 때 범람하다시피 했던 코믹폭력물이 다시 등장한 셈인데 그런 장르에 목마른 관객들에게 딱 알맞은 작품입니다. 조폭 보다는 경찰의 관점에서 영화를 끌어가고 있고, 한 명의 배우가 아닌 여럿에게 역할을 분담시켜서 웃음코드를 나누고 있습니다. 폭력은 거세고 유머는 많고 내용은 전형적인 권선징악이고 큰 비극이 없어서 찜찌름함이 없고, 다소 뻔한 스토리지만 그만큰 안전했습니다. 폭력물이지만 비극적이지 않고, 아주 기발한 유머는 없었지만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가벼운 유머가 영화 내내 등장합니다. 다소의 유치함을 감수하면서 말장난이 계속 나오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유머와 예기치 않은 엉뜽함, 황담함을 계속 던져주고 있습니다. 강력한 한 방 보다는 계속 이어지는 가벼운 재미가 많은 영화입니다.
액션영화로서의 재미와 코미디 로서의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던져진 작품인데 다행스럽게 성공한 케이스 입니다. 많이 웃기고 오락성도 높습니다. 애초에 깊이있는 명작이나 메시지를 기대하지 않고 즐기러 간다는 생각으로 본다면 불특정 다수가 대체적으로 재미있게 보고 나올만한 내용입니다.
내용은 머리아플 부분이 크게 없는 단순하고 다소 기발한 내용입니다. 마약밀매 조직을 검거하기 위해서 용의자 일당들의 아지트 건물 맞은편의 치킨집에 잠복근무를 하는 마약반의 고반장(류승룡)과 동료 형사들. 며칠째 잠복근무중이던 치킨집이 장사가 안되어 폐업을 하게 되자 당황한 고반장 일행은 계속적인 잠복근무를 하기 위해서 급기야 고반장의 퇴직금을 땡겨서 치킨집을 인수합니다. 장사가 아닌 잠복이 목적이었지만 손님이 오게 되자 하는 수 없이 닭을 만들어 팔게 되는데 아버지가 수원에서 고기집을 하던 마형사(진선규)는 왕갈비 양념에 치킨을 버무린 왕갈비 치킨을 얼떨결에 내놓고 그 치킨이 인기를 끌면서 그 집은 맛집으로 소문이 납니다. 손님들이 넘쳐나고 형사들은 잠복근무가 아닌 치킨집 운영에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됩니다.
다소 기발한 내용입니다. 잠복근무를 위해서 치킨집 운영으로 위장하여 마약 밀매조직으로 의심되는 조직을 감시하는데 예기치 않게 그 가짜 치킨집이 너무 장사가 잘 되어 버립니다. 박봉에 시달리던 고반장은 아내에게 명품까지 사주게 되고.... 어쩌면 경찰보다 닭집 운영이 더 나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됩니다. 밤낮없이 잠복근무에 야근에 특근에 힘들던 경찰의 삶, 하지만 치킨집 운영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하루 200만원이 넘는 매상을 올리는 대박집이 되어 주방, 서빙, 주문, 음식 손질 등 잠복근무보다 더 고달픈 치킨집 운영이 되어 버리지요.
물론 경찰 액션 폭력물 답게 어느 시점에서 조폭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경찰과 치킨집 운영의 기로에 있던 마반장 일행은 다시 경찰본능이 솟구치며 마약 조직 검거를 위해서 돌진합니다. 후반부에는 액션장면도 상당하지요. 마반장 역의 류승룡을 비롯해서 장형사 역의 이하늬가 모처럼 메이저 배급영화의 메인 주연급으로 등장하고, 요즘 새롭게 부상하는 진선규가 이하늬와 투닥거리면서 애정전선을 형성하는 마형사 역으로 많은 웃음을 줍니다. 거기에 이동휘와 공명이 합류하여 5인방의 형사팀을 이룹니다. 조폭두목 이무배 역은 의외로 신하균이 조연으로 출연하는데 원톱 주연도 가능한 배우가 기꺼이 조연으로 등장하여 잔인하면서도 코믹한 조폭 역할을 합니다. 경찰서장 역의 김의성도 감초 같은 조연으로 등장하고, 조연진 중에서 좀 개성있는 캐릭터로는 모델 출신 장진희가 연기한 선희 라는 터프한 여성인데 신하균의 오른팔이자 보디 가드 같은 역으로 코믹한 영화속에서 등장하는 '무뚝뚝하고 진지한 역할' 입니다. 신하균 옆에 무표정하게 붙어 있다가 지시를 받으면 무자비한 폭력을 상대방에게 행사하는 무섭고 터프한 여성입니다. 대체로 코믹한 캐릭터들이 즐비한 와중에 혼자 무거운 캐릭터를 소화하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던 캐릭터 입니다.
관객들은 가볍고 단순한 영화를 더 원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재미가 보장될 때 그렇지요. '과속 스캔들' '써니' '타짜 신의 손' 등 다수 히트작을 각색했던 재주꾼 이병헌 감독이 CJ 의 전격 지원하에 연출한 작품으로 젊은 감독의 감각적인 위트가 돋보입니다. 잘못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폭력만 난무하는 식상한 영화가 될 수도 있는 장르지만 조금 덜 유치하고 조금 더 웃기고 조금 더 기발한 '2% 우세한 영화' 로서의 경쟁력을 갖춘 작품입니다. 류승룡의 전작 '염력'에 비해서 훨씬 나은데 '염력'이 슈퍼 히어로급 능력을 갖춘 주인공이 기껏 동네 상가 괴롭히는 양아치들이나 상대하는 좁은 세계관에 갇혀 망했는데 '극한직업'은 여려 출연자들에게 유머를 분산시키고 과한 욕심보다는 가벼운 재미를 지속적으로 주겠다는 생각으로 나름 힘을 빼고 만든 영화같은 느낌입니다. 일단 민폐캐릭터가 등장하지 않고, 주,조연급 배우들이 각자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상대 배우들과 제대로 역할 분담을 하고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류승룡은 이번 작품으로 모처럼 한숨 돌릴 것 같고, 이하늬는 어쩌면 인생의 흥행작이 될 수도 있고, 진선규는 '범죄도시' '암수살인' 등의 흥행여세를 몰아서 좀 더 비중이 있는 역할로 도약하는 좋은 발판이 될 것 같습니다. 진선규는 이하늬과 진한 키스씬까지 하는 행운을 부가적으로 누렸습니다. '범죄도시'나 '암수살인'에서 꽤 진지한 역할이었더 진선규가 코믹 연기도 굉장히 능청스럽게 잘한다는 것을 증명하였고 40대에 접어들어 늦깎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약갼 마이너리티 느낌이 들던 이병헌 감독이 흥행감독의 대열에 합류할 것 같습니다.
'극한직업'은 요즘 기준으로는 흔한 장르는 아닙니다. 그런데 하필 다음주에 유사한 경찰 범죄 액션물인 '뺑반'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장르가 겹치는 불리함이 있네요. 둘 중 어느 것이 최후의 승자가 될지 모르지만 '극한직접'이 일단 성공적인 스타트를 먼저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무난한 흥행을 이어가던 '말모이'와 '내 안의 그놈'의 상영관수, 관객수가 확 급감했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범, 시장은 한정되어 있고 스크린도 한정되어 있으니 모두가 윈윈할 수는 없는 것이 자본주의 산업의 냉정한 현실입니다. '극한직업'의 개봉으로 흥행시계가 완전히 새로 바뀌었고, 몇 달동안 독보적 흥행작 없이 분산되어 관객에게 선택의 폭을 넓게 했던 극장가는 영화 한 편으로 급쏠림하는 현상이 모처럼 벌어졌습니다. 적어도 1주일간은 '극한직업'의 독주가 예상되며 다음주 개봉하는 '쇼박스'의 '뺑반' 2월 중순에 개봉하는 롯데의 '증인'이 CJ의 '극한직업'을 추적하는 후속작으로 연초의 CJ, 쇼박스, 롯데가 벌이는 한국영화 경쟁이 볼만할 것 같습니다.
ps1 : 이 영화는 속편이 나오기 딱 좋은 설정이네요.
ps2 : 후반부에 영웅본색에 헌정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예 주제곡까지 틀어주고 있고.
ps3 : 이하늬와 장진희의 대결이 너무 쉽게 끝난 것이 좀 아쉽네요. 장진희는 좀 신비스러운 캐릭터이기도 했는데 후반부에 활용비중이 생각보다 적었네요. 삼국지의 여포처럼 활용했으면 좋았겠는데. 진선규와의 대결 역시 너무 일방적이어서 좀 일관성이 없는 느낌입니다. 진선규, 이하늬의 균형을 맞추면서 장진희를 좀 더 활용했다면 좋았겠는데.
ps4 : 류승룡이 진급은 못하고 만년 반장이라서 자존심 구기는 역할인데 '수사반장'이 우리나라에서 워낙 장기 방영한 드라마라서 그런지 반장이 높은 직책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 영화에서는 반장에 머물고 있어서 자괴감을 느끼는 설정이 좀 새롭습니다.
ps5 : 신신애가 감초같은 역할로 재미를 주고 있고, 복길이로 알려진 김지영도 간간이 영화에 모습을 비추는군요. 이 영화에서는 류승룡의 아내 역할입니다.
ps6 : 이병헌 감독 영화는 이제 모두 챙겨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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