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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반(2019년)] 소재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의 범죄영화

호기심을 품고사는 중 2020. 6. 5. 21:51

 

 

뺑반

2019년 한국영화

감독 : 한준희

출연 : 공효진, 류준열, 조정석, 염정아

전혜진, 손석구, 이성민, 이성욱

 

 

한국 영화의 개봉작 일자별 목록을 보면 갸우뚱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가장 이해가 안 되었던 부분은 <안시성> <명당> <협상> 세 편이 동시 개봉한 지난 추적 시즌이 그랬다. 영화란 흥행을 위해서,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손익분기점 달성"을 목표로 개봉하는 것인데 손익분기점 300만 명 이상의 영화 3편이 같은 날 개봉하는 것은 같이 망하자는 의미 외엔 없다.

 

이번 <뺑반> 역시 경찰 액션 영화인데 <극한직업>과 한주 간격으로 개봉하고 있다. 경찰 액션 영화는 제작비가 많이 들고, 그래서 자주 등장하는 장르는 아니다. 다만 흥행을 목적으로 선호되는 장르이긴 하다. <극한직업> 은 코믹물이고 <뺑반>은 아주 진지한 영화긴 했지만 경찰 액션물이라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굳이 이렇게 붙여서 개봉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긴 12월에 개봉했던 <마약왕>과 <피엠씨(PMC): 더 벙커>에 지레 겁을 먹고 피하기 바빴던 한국 영화의 개봉 일정이었다. 결과론이지만 송강호, 하정우라는 대한민국 최고 흥행배우 원투 펀치가 등장한 두 영화 모두 헛방을 날린 실패작이 되었기 때문에 그때가 사실 기회였을 수 있다. 신이 아니고서야 이런 흥행 결과를 어찌 알 수 있을까?

 

 

다시 돌아가서, 두 경찰 영화가 맞붙었는데 이런 경우 어떤 영화가 유리할까? 우선은 선빵을 날리는 경우가 좀 더 유리하다. 즉 먼저 개봉한 <극한직업>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다. 영화가 고만고만하면 먼저 개봉한 것이 유리하지만, 잘 만들었다는 자신이 있어서 장기 흥행이 가능하다면 늦게 개봉되어도 상관이 없다. 대표적으로 <군함도>보다 1주일 늦게 개봉한 <택시운전사>는 오히려 <군함도>가 혹평을 받으며 빠르게 관객 감소가 되는 틈을 타서 더 이익을 본 경우다. 아쉽게도 <뺑반>은 그런 기대는 빨리 접는 게 나을 것이다. 앞서 개봉한 <극한직접>이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고, 이로 인하여 오히려 비교 열세가 확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대작 두 편이 나란히 한 주 간격으로 개봉할 때 뒤따라가는 경우는 더 잘 만들어야 하는 건 기본이다. <뺑반>은 <극한직업>을 더 돋보이게 해주는 페이스메이커 역할로 끝날 운명이라고 본다.

 

<뺑반>의 의미는 뺑소니 전담반이다. 이 제목부터 좀 어긋난 느낌이다. 이건 협상 능력이 영화의 내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영화 <협상>과 다소 비슷한 경우다. 제목만 보면 뺑소니 전담반 경찰의 애환이나 활약을 주제로 했을 것 같다. 그런데 영화의 내용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주인공 은시연(공효진)은 원래 뺑소니 전담반이 아니었으나 해당 부서에서 담당했던 사건이 제대로 풀리지 않자 좌천되어 뺑소니 전담반으로 오게 된 것이다. 이 영화에서 뺑소니 전담반 본연의 역할을 나름 보여준 부분은 은시연이 서민재 순경(류준열)과 만나서 처음 겪은 사건 정도다. 그 사건 이후에는 뺑반으로서의 특별한 내용은 없다. 그럼 무슨 이야기일까?

 

 

<뺑반>에서 전개되는 스토리의 큰 줄기는 젊은 악덕 기업가인 정재철 회장(조정석)이 은폐하려고 한 뺑소니 범죄와 그와 결탁한 경찰청장의 비리, 이 부분을 파헤치고 정재철을 처단하는 내용이다. 그 사건을 담당했던 주인공 은시연이 뺑반으로 발령이 나긴 하지만 이 이후에도 경찰들이 정재철을 엮으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이야기다. 즉 뺑반은 그냥 공효진과 류준열이 몸담은 소속부서일 뿐, 내용 자체가 뺑소니 전담반의 다양한 이야기나 에피소드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경찰 대 악덕 기업가의 치열한 싸움이다.

 

조정석이 연기한 악덕 기업가 정재철, 그리고 이를 수사하는 경찰,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가려면 이 메인 악역에 대치하는 메인 주인공, 즉 메인 선역이 있고, 두 사람간의 팽팽한 균형과 긴장감으로 영화가 흘러가야 한다. 영화가 시작하고 좀 지날때까지 관객들은 당연히 공효진이 그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도대체 공효진은 뭘 한 걸까…. 갸우뚱하다. 분명 주인공인데 한마디로 한 게 없다. 소설로 치자면 1인칭 관찰자 시점?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야기의 중심은 공효진이 아니라 류준열이 연기한 서민재라는 인물로 옮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민재는 나름 '사연'이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비중 있는 인물들, 서민재의 상관인 우계장(전혜진), 양아버지(이성민) 그리고 주변 동료들 모두 서민재와 엮여 있는 인물들이다. 은시연의 역할은 서민재를 따라다니면서 그가 어떤 인물이고 어떤 사연을 가졌는지를 관객들과 함께 목격하는 역할 정도다. 아니 이럴려고 주인공을 했나?

 

물론 은시연 관련 이야기도 처음에 거창하게 벌리긴 한다. 오프닝의 사건이 터지고 뭐라도 할 것처럼 출동하고, 같이 동거하는 듯한 금수저 검사도 있고, 선배 경찰(염정아)도 있고, 뭐 주변 인물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연인 같은 검사와 함께 정재철이 운영하는 사업장에 잠입해서 도청 시도도 하고…. 정말 뭔가 할 것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고 주변 인물들도 장황하다. 그런데 그곳에 서민재가 떡 나타나고부터 은시연의 존재감은 사라진다. 이후부터는 서민재에 대한 여러가지 장황한 설명으로 영화가 흘러가고 있다. 거기다 서민재가 정재철을 처리해야 할 아주 분명한 이유까지 생기고.

 

 

등장인물도 많고 내용도 장황하다. 잔뜩 벌려놓기는 잘하는데 정리를 못한 영화라고 할까. 처음에 은시연의 활약을 보여줄 영화처럼 기세 좋게 나가더니 어느 순간 서민재가 등장하여 그 자리를 빼앗는데 서민재는 사연도 있고 출중한 능력도 있는 인물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더 장황해진다. 너무 장황하게 이것저것 벌리다가 끝에 가서 난장판이 된다.

제목이 뺑반이니 멋진 카체이스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라도 있는 것처럼. 실제로 멋지……다기 보다 멋질 뻔한 카체이스를 후반부에 마구 선사하는데, 그게 벌어지는 과정은 한 편의 코미디다. 엉뚱한 신파까지 섞으며. 자동차를 몰고 인천공항으로 폭주하는 정재철을 잡기 위해서 인천의 온갖 경찰들이 총동원되고, 거기에 견인차 기사들까지 동원된다. 물론 교통상황실까지 모두 정재철 잡기에 모든 인력이 동원되고……. 세상에… 아니 대한민국같이 인구 많고 차 막히는 나라에서 폭주하는 자동차 하나 가두기가 그리 어려운 게 아닌데. 그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몇 개의 진출입로만 막으면 쉽게 체포하는 것을 굳이 온갖 경찰차와 견인차까지 동원되어 막아세우고, 더구나 최고의 레이서라는 서민재가 쫓아가고 있고…. 이 상황은 굉장한 코미디다. 아마 세계 제일의 카레이서가 인천에 와서 달려도 이렇게 온갖 경찰과 견인차 기사들이 막아서는 도로를 뚫고 나가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의 출국이 걱정되면 공항에서 경찰을 대기시키면 되고, 아직 영장도 발부 안되었는데 익히 알려진 유명 인물을 왜 한밤중에 굳이 도로를 엉망으로 만들면서 잡으려고 하는지.

 

 

 

더 자세히 설명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억지로 만들어낸 이야기와 설정을 무리하게 전개하다 탈이 난 영화다. 무엇보다 분명 주인공인 공효진에게 역할 다운 역할을 안 준 건 좀 심하다. 상업영화의 주인공이 이렇게 별 역할도 못하고 등장만 많이 하는 것은 정말 보기 드문 경우다. 본인도 연기하면서 짜증 났을 듯. 그렇다고 뭐 건질 게 전혀 없는 영화는 아니다. 요즘 꽤 잘 나가는 배우라고 할 수 있는 류준열의 존재감은 그 와중에 빛났다. 오히려 꽤 전지전능한 인물로 설정되었던 <독전>보다 이 영화에서의 존재감이 더 높았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순경이지만 팀의 "에이스"라고 소개되었듯이 뭔가 능력이나 사연이 있는 인물이었고, 영화가 전개되면서 그 베일을 한 꺼풀씩 벗고 있다. 악역을 연기한 조정석 역시 괜찮았다. 말을 더듬는 연기도 무난했고, 사악한 광기를 오버스럽지 않게 잘 표현했다. 결국 장황한 이야기 대신에 류준열, 조정석 두 배우의 대결구도로 처음부터 팽팽하게 이끌었다면 좋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는데 너무 이것저것 불필요하게 벌려서 영화도 길어졌고 내용도 산만했다. 공효진은 배우의 문제가 아니라 각본상 역할을 주지 않은 게 문제였다. 억지로 류준열과 투톱으로 설정하려고 후반부에 노력한 흔적이 있지만 그러려면 막판에라도 중요한 역할을 주었어야 하는데 끝까지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뜬금없이 쏟아지는 비는 오히려 식상한 느낌이 들었고, 두 차량이 레이스 하라고 다른 차량들은 다 어디 갔는지 텅 빈 도로가 도대체 대한민국 광역시인 "인천"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출발할 때는 한낮이었는데 갑자기 오밤중이 된 것 까지는 양보한다고 쳐도, 비어있던 도로가 역주행 상황이 되니 차량이 쏟아지기도 하고.

 

 

경찰이라는 특수 직업에서 이 영화는 웬 여경찰들이 그렇게 많은지, 그 부분도 비현실적이다. 공효진, 염정아, 전혜진, 공효진의 직위가 제일 낮았는데 경위였으니 간부급 여성만 2명이었다. 남녀의 단순 "산술적 균형'이 의미 있을까? 그나마도 역할을 제대로 부여받은 건 공효진이나 염정아가 아니라 전혜진이었는데 만삭의 경찰로 카리스마도 있었고, 활약도 있었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에서 보여준 경찰 역할이 무난했고 인상적이어서 이 영화에서도 캐스팅된 것 같다. 주인공 같지 않은 주인공, 뜬금없는 악역 변신 등으로 방향을 잃은 두 캐릭터에 비해서는 꽤 온전한 역할이다. 그냥 류준열, 전혜진으로 등장인물을 좁히고 둘이 활약하여 악덕 회장을 처단하는 것으로 단순화 시켰다면 좋았을 것 같다. 아니면 <극한직업>처럼 골고루 균등하게 역할을 주던지. 내용의 간소화, 깔끔한 정리, 배역의 역할분담 등에서 모두 실패한 작품이다.

 

덧붙여 포스터는 <앤트맨과 와스프> 표절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상황이고, 오프닝과 엔딩 타이틀의 디자인은 <미션 임파서블>이나 마블 영화를 흉내 낸 것 같으니, 참 겉멋은 들어갔지만 독창성이 없었다. 류준열도 너무 초인 같은 존재로 설정했는데 초인이면 아예 일관성 있게 초인이어야 하는데 자동차 하나 막아서려다 허무하게 뻗어버리는 설정은 또 뭔가? 추리력은 셜록 홈즈에 운전 실력은 최고의 카레이서를 능가하고 싸움 실력은 초인적인데 가끔 황당하게 약해질 때가 있다. 그에 비하면 공효진은 역할도 없었지만 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어디로 사라졌다가 나타나서 결정적으로 일을 그르쳐 버렸을까? 혹평하자니 끝이 없지만 배우들의 눈물겨운 고생과 노력이 안쓰러워 이 정도로 마쳐야겠다. 아, 그리고 "쿠키영상'도 있다. 마블 영화 흉내는 정도껏 냈어야지. 

 

ps : 시작은 거창했지만 먹어치우지도 못할 음식만 잔뜩 주문하고 감당 못한 느낌이다. 주인공이 역할이 없다면 민폐라도 끼치지 말아야지. 그리고 악당이 무슨 초인도 아닌데 그 한 사람 체포하자고 온갖 경찰이 동원되어 인천의 도로를 쑥대밭으로 만들 필요까지야. 무슨 생각으로 이런 각본의 영화를 탄생시킨 건지 이해가 안 간다. 고생은 고생대로 실컷 해서 만든 영화인데. 각각의 장면들을 찍기 위해서 고생한 배우, 스탭들 그리고 낭비된 자동차들, 제작비 등. 감독의 연출, 각본 능력 하나가 문제가 되면 이렇게 여러 고생한 사람들의 노력이 허무해지는 게 영화라는 상품의 단점이다.